감흥과 산책
나의 학창 시절
부장리 김 정 숙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 초등학교 졸업식을 했다.
졸업식 날 구세군 음암교회 반사들이 와서 졸업을 축하해주고
후배들이 운동장 양쪽에 길게 서서 축하를 해주었다.
어머니께서는 영신반점에서 자장면을 사주셨다.
중학교 입학과 함께 학교 근처 언니가 자취하던 곳으로 집을 떠나 생활했다.
언니는 3년째 언니 친구 형옥이 언니 네서 친구와 자취했는데
동생인 나와 함께 지내야 하므로 먼저 자취하던 친구와는 떨어졌다.
언니가 다져 놓은 자리에서 무탈히 학교생활을 하였다.
언니는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사근사근해서 친구 관계도 좋았다.
나는 말이 없고 사교성도 없어 주로 언니 이야기를 잘 듣고 지냈다
언니는 학생잡지를 친구에게서 빌려와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있었고,
자취하던 친구 집에도 가끔 놀라가 책을 빌려다 읽고 읽었다.
공부에는 취미가 적었으나 시험을 보면 중상은 했다.
그러나 언니는 공부를 참 잘했다.
3학년이 시험을 보면 복도에 붙여 공개를 했다.
난 자랑스러운 언니 성적을 보려 3학년 교실 복도로 가서
한참을 언니 것을 보고는 뿌듯해했다.
수업시작과 마치는 시간을 '지고네이르바이젠'으로 종을 대신하고
점심시간에는 한국 가곡을 들려주었다.
자연스럽게 한국 가곡에 흠뻑 심취하게 되었다.
당시 흑백텔레비전에 소프라노, 이규도 등 성악가들 노래를 들려주었고,
라디오프로에서는 작곡가 ‘최영섭' 씨가 가곡을 설명해주고
함께 들려주는 프로를 즐겨 들었다.
나는 특히 테너 엄정행 씨를 좋아 했다.
그 분이 제직했던 경희대도 더불어 좋아 했다.
그 분의 노래 중에서 톱으로, ‘목련화'를 좋아했기에 테이프를 틀고 따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급기야 경희대 예술의전당 야외 음악당에서 몇 년 전 직접 뵐 수 있는 영광도 맞보았다.
나의 가곡 사랑과 잘 부르고 싶은 욕망은 서울시민대학 ’김영선 성악교실'로 향하게 만들었다
도도했다던 소프라노 김영선 교수님은 유방암 발병으로
새로운 인생길을 걷고 계신 분이기도 하다.
늘 수강생들에게 혼신을 다해 정성껏 대하고 지도 하셨다.
봉사 또한 관심을 갖고 계셔서 서울시 복지 메아리단으로 활동하면서
용답동에 있는 비젼트레이닝 센터를 알게 되어 시인대학 김영선 가곡교실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예술이 주는 풍요로움의 정서를 공유하고 나누고 싶어 하시는
김영선 교수님의 진솔한 삶과 노래가 내 삶에도 크게 기여해서 지친 삶을 일으켜 주었다.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하고 있지만 안부를 묻고 지내고 있다.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다양한 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어야 함에도,
지금 교육체제는 입시로 몰고 가면서 청소년들의 정서에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염려 된다.
작은 오빠 딸인 조카가 중학교 음악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 또한 예체능 수업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학생들을 걱정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나고 겪어보니 나도 알겠다.
독서와 예술과 봉사활동이 나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
내 삶을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견디게 해주었다.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니체가 말했듯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힘은
몰입과 중독으로 가는 예술가적 삶이라고 외쳤듯이 나는 오늘도 노래 부른다.
''오~ 내 사람 목련화야~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