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자존심과 홍콩 붉은 마천루5
4. 찌뿌둥한 머리 새벽 빗길을 달리다
객지의 잠이 낯설어서일까? 순간 눈이 떠졌다.
그러나 엊저녁 먹은 적지 않은 술로 눈을 감고 뒤척이는데
2호방에 머물던 박성수 씨가 서두르라고 벨을 울려 주었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화련으로 가 탐방한다.
기차 출발이 9시란다. 기차역까지는 거리가 멀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씻는 둥 마는 둥 입에 맞지 않는 아침을 대충 때우고 7시 20분 숙소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새벽부터 내리는 빗발이 아직도 성성하게 내리는 바람에 출근시간과 맞물려 유난히 길이 밀린다.
여지없이 길에는 비에 젖어 달리는 오토바이 행렬들로 새벽부터 이어졌다.
허름한 비옷을 대충 걸친 출근길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장관이다.
오토바이마라톤이라도 열리는 듯 일시에 치고나가는 몇 백 대의 오토바이가 꿀벌처럼 웅웅 댄다.
비가 와서 밀리는 차량의 무리를 뚫고 마침내 8시 50분 기차역 가까이 버스를 대주었다.
일행은 차로를 가로질러 허둥지둥 기차대합실을 향해 달린다.
아직도 기차 타는 승강장까지는 멀기만 하다. 성한 사람도 달리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달린다.
어쨌든 이 기차에 올라타야 일정이 소화되기 때문이다.
역시 의리의 사나이 최영욱 씨가 기다려 노인들을 안전하게 기차에 오르도록 리드해 준다.
대한의 남아, 아니 대한의 경로실천자로다.
기차 출발시간 내에 겨우 기차에 오른 일행에게 가이드는 마침내 이마의 땀을 씻는다.
“제 가이드 생활 중에 가장 괴로운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차 시간을 대지 못한 경우도 없었고, 자칫 몇 명이 출발하고
몇 명이 남아도 문제고 긴장해서 땀 좀 흘렸습니다.”
아침에 먹은 쌀 몇 톨이 거구로 솟는지 속이 부글부글 거북하다.
그러나 두어 시간 남으로 내려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거려 준다.
우리는 어쨌거나 푸르른 이국의 대자연을 만나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던 시들시들한 들풀과 울긋불긋하던 단풍은 어디도 볼 수 없었고,
아직 푸르게 열매를 맺고 있는 호박덩굴이 신기했고,
대나무는 봄인 듯 땅에 새 줄기를 세워 올리며 빗속에 능청스럽게 서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역시나 곳곳에 금색, 홍색 찬연한 사찰과 푸른 나무들이 생생하게 초여름을 장식하고 있었다.
일반 가옥은 회색의 시멘트를 그대로 허름하게 걸치고 있었으나
사찰들만큼은 팔작지붕은 하늘을 받치듯 오르고 그 모습에 동공이 확대된다.
스치며 지나는 풍광에 그만 다시 카메라를 들이대게 하였다.
모과 속 같은 늙다리 가슴에도 분홍빛 진달래가 맺히는가,
어깨가 절로 건들건들 거북하던 위속 내용물들이 소화가 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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