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체기행(集體紀行)3.
흐르는 강물 고승의 고뇌 살아 숨 쉬는 신륵사
이 정 애
해마다 그 해의 끝자락에 상록의 자취를 남기는 행사,
푸른그루 교지 편찬을 위한 글쓰기의 하나로
남한강 따라 경계를 이루고 서 있는
천년세월의 사찰 신륵사를 찾은 날이다.
기행문을 쓰기 위한 답사지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신륵사와 세종대왕릉,
목아불교 미술박물관을 두루 굽어 돌아보았다.
11월 7일 자욱한 안개 속을 두 시간 동안
길 찾아 속절없이 헤매다 도착한 곳 신륵사,
일주문을 들어서니 남한 강변을 바라보고
넓은 평지에 아담한 신륵사의 경내가 된다.
의연히 당대의 시대를 고스라니 간직한 곳,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족히 느낄 수 있는
사연 많은 사찰이다.
벽돌로 지은 탑이 있다 하여 ‘벽사(璧寺)’라고도 하고
세종대왕릉을 여주로 이장하고 이 릉을 모실 곳으로
신륵사를 중수하고 ‘보은사(報恩寺)’라고 하였다.
사찰에 들어서니
우리 일행을 반기는 연꽃형 세심정(洗心亭)에서
조롱박에 약수를 받아 마시고 담론을 시작하였다.
이곳을 들른 목마른 객에게 가을을 축여
당대의 역사를 세세히 귀띔을 해주는 듯
샘물이 주는 정감은 색다르다.
천년지수(千年之水 감천수(甘泉水)일지라.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579~631) 때 세워졌다 하니
천년이 넘은 오래된 사찰이다.
그 간의 세월이 말 해주듯
누각마다 탑 마다마다에 서린 애환도 들려주는 얘기도 많다.
조사당(祖師堂)에 고이 모셔있는 지공(指空)‧ 나옹(懶翁)‧ 원효(元曉)
세 분의 스님이 시대적 배경을 이기지 못하여 겪었을
심신의 답답함을 남한 강변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띄어 보냈으리라.
그래서 선각자는 외로움이요,
고독함이요,
산천초목이 벗이었을 테고 깨달음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 년을 이렇게 살아있지 않소!
대를 이어 이렇게 자손들에게 당신들의 업적을 이루어 남기고 있잖소!’
내 마음은 그리 외치고 있었다.
조사당 바로 앞마당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듯
거대한 향나무가 살아있었다.
생향(生香)을 피우고 조사당 전각을 지키며 편안히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숲을 이루는 특이한 나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향나무가 신륵사 안주인을 옹호하고 있다면,
벽사와 보은사라는 두 이름을 옹호하고 있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두 그루지만 하나인 듯 쌍둥이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은행나무였다.
남한 강을 바라보듯 절을 굽어보듯
다층석탑과 대장각비를 수호하듯 난형난제(難兄難弟) 똑같은 기상으로
600년을 버티듯 서 있는 나무는 아직도 건재하며
나이로 치면 청춘에 가깝다.
용문사(龍門寺)에 1200년 은행나무에 견주어 보면 한창 성장기니 말이다.
고려 말 이색(李穡)이 공민왕(恭愍王)과
부모의 명복(冥福)을 빌고자 하는 효심이 살아있고,
세종(世宗), 효종(孝宗) 임금님들의 영혼을
이곳에 모시고 기원하고 발원하였던 자리이다.
영(靈)과 육(肉)을 넘나드는
인고의 세월을 미리미리 준비했던
지공, 나옹, 원효 스님의 끝없는
정성이 눈에 보이듯 선하다.
후세에 태어난 내게
이러한 답사의 기회는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
특출한 나옹스님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의하여
들어선 절이어서 삼성인(三聖人)을 모신 터이며,
사찰 이름이 셋으로 쓰이는 뜻이 서려있는 듯하다.
모셔진 부도로 둥근 종처럼 세워진 석종(石鐘) 사리함이
살아서의 공로가 무궁무진함을 드러나 보이고
부도 앞 석등(石燈) 역시 그 어떤 등 보다 묵직한 여운을 준다.
남한강을 이용했던 나룻배의 등대가 되었다고 한다.
다층석탑이나 석종 석등이 어쩜 그리도
하나같은 절의 내력과 어울려 공감을 주고 있을까 신기하다.
그 시절 얘기들이 배어 있는 듯 새록새록 사료(史料)들을 풀어내고 있다.
강변을 바라보며 감흥에 젖다보니
이렇듯 평화롭게 자리한 사찰도 그리 흔치않다.
나옹스님의 다비 장소였다는
강월헌(江月軒)에 정자는 평화로운 심상이 그지없다.
유유히 굴곡도 없이 잔잔한 물살은 모든 욕심을 그 곳에 던지게 한다.
황금 빛 솔잎, 빨간 단풍, 노란 은행잎이 뒹구는 길을 묵념하듯
색깔 별 낙엽 속에 감추어져 있을 얘기들을 캐물으며 다음 길을 재촉한다.
다시 한 번 차분한 방문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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