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隨筆) - 삶과 이야기
화물칸 수학여행 1
고 15회 동문 수필가
송 옥 영
헌책이 들어있는 상자를 정리하다 빛바랜 남편의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발견했다.
겉장엔 단기 4291년 3월14일이라는 활자가 또렷하게 찍혀있었다.
그 때 곁에 있던 남편이 사진첩을 들고는 앨범 속 얼굴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시간의 영사기를 거꾸로 돌리기 시작했다.
수차 들었어도 그의 수학 여행담은 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남편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한 학년 학생 수가 통틀어 오십 여명 남짓 되는 시골 학교였다.
막 육학년을 올라간 어느 종례시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너희 중에 기차타고 서울 구경해 본 사람 있냐?”
“아니요.”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합창을 했다. 그 때 영식이가 큰소리가 말했다.
“가 본 적은 없지만 가끔 구경은 했습니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그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삼촌께서 가끔 서울 구경 시켜준다며 양쪽 귀를 잡고 위로 올려주어 실컷 보았습니다.”
“예끼 이놈.”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곧이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토요일에 서울창경원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다.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 여행준비를 하도록 하여라.”
학교 부근에 철길이 있어 달리는 기차는 수없이 보았지만 그것을 타 본 사람은 없었다.
그 기차를 타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다니, 마음은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선생님께선 여행 준비를 하라고 하셨지만 마을 사람 대다수가 춘궁기엔 양식이 떨어지면 장리쌀을 얻거나 보리풋바심을 해먹던 형편이었다.
어머니가 꾹꾹 눌러 싸 주신 도시락 속엔 일 년 열두 달 단골 반찬인 무와 깻잎 장아찌만 들어있었다.
수학여행을 간다고 해서 보리에 쌀이 조금 더 섞일 뿐 달라질 것이라곤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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