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火田)
윤 상 옥
이른 봄 깊은 산 속
높은 산봉우리엔 아직도 하얀 눈이
햇살을 받고 반짝반짝 눈부시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두둥실 몽실 아름답게 떠다니고
농부는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려고
깊은 산골 비탈진 땅 일구느라 일손이 바쁘다.
나뭇가지를 자르고 떨어진 잎들을 긁어모은다.
이 곳 저 곳 말끔히 복판에 모아놓고 불을 지른다.
타고 남은 재를 거름 삼아 밭을 일군다.
소에 멍에를 걸고 쟁기를 달아 밭을 간다.
고랑을 만들고 ‘이랴이랴 어디어디 워워’ 농부는 콧노래가 나온다.
자연을 벗 삼아 그윽한 흙냄새 신선한
산바람 솔솔 옷깃에 스며든다.
새싹은 땅을 헤치고 힘찬 발길질 하며 고개를 들고 나온다.
화전에는 감자, 옥수수, 심고, 소는 풀을 뜯고
꿩은 큰소리로 꺼거덩 푸드드덕 힘찬 날갯짓을 한다.
노루가 푸른 약초 맛있게 뜯고,
아지랑이 아롱아롱 뭉게구름 춤추고
강남제비 집터 잡고 꿩이 알을 까고
삐약삐약 꺼벙이 엄마 꿩 따라 조르르조르르
잘도 거닐고 멧돼지 먹이 찾아 땅을 뒤진다.
산골 여인
고사리, 두룹, 곰취, 도라지, 더덕, 민도라지,
중꽃나물, 미역취, 잔대싹 삼추싹,
산뜻한 향기 봄내음 가득 한 보퉁이 머리에 이고
비탈길, 내리막길 보퉁이가 뛴다.
서산 노을 황홀하고 보따리 점차 목 누르네.
넉넉하지는 않겠지만,
마음만은 부자. 해는 서산에 꼴딱 넘어가고
이름다운 꽃구름도 춤추네.
몽실몽실 꽃구름 세월 가듯 잘도 뭉쳐 도네.
농부 가슴에 희망이 가득,
소 풀 베어 죽 끓이고 방구석에 소나무 관솔
잘게 쪼개서 불 피운 데 고단한 몸 누이며
내일 새벽 눈 비비고 산에 오를 꿈을 꾼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변하는구나.
해가 가고 달이 가도, 해도 땅도 변하지 않고
매년 씨를 품어 어김없이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알찬 곡식 쌓이고 자식 길러 출가 시키는
나의 고향 화전은 영원한데
이 내 몸은 어느 덧 늙어 버렸다.
땅도 그대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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