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隨筆)과 울림
파 다듬는 할머니
고 26회 이 정 애
이른 새벽 눈을 뜨면 ‘오늘은 뭐로 시작할까?
그래 경동시장 가자!’
주석주석 가볍고 따뜻하게 차리고 나서면
어둑한 시간인데도 거리는 부산하게 움직인다.
갈 때는 걸어서 가고. ‘오늘은 마늘하고 참기름, 들기름, 파를 사야지.’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 기본적인
양념부터 준비해 놓고, 마음의 준비부터 해둔다.
기름집 꼬부랑 할머니가 나를 반기고, 채소전의 파가게도
역시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말 몇 년을 지나치면서 봐도
늘 그 자세로 앉으셔서 파를 다듬으신다.
열심히, 표정까지도 진지하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파 다듬는 일에만 집중하고 계신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아기 눈처럼 반짝인다.
나는 안다.
나이가 자셔도 마음이 한결같고, 매사에 적극적이신 분들은
어찌나 눈망울이 맑고 그윽한지를! 문을 열면 맵고 알알한 공기가
확 다가오는 데도 아랑곳없이 그 일을 놓지 않고 있는 까닭이 궁금하기도 하다.
“할머니! 눈 안 매우세요?”
물으면,
“처음에는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지금은 단련이 돼서 괜찮아.”
하신다.
오히려
“지금껏 돋보기를 안 쓰시는 걸 보면 해롭지는 않은가봐.”
하시며 신기한 듯 얘기를 하신다.
“아하, 그렇군요.
파는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아요. 생명력이 강해서
면역력에 좋다고 들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대단해요.”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 파뿌리 가져가도 돼요? 말려서 약에 쓰게요.”
주섬 거리며 욕심을 부린다.
식당에서는 까놓은 것을 덤을 주고 사가지만,
나는 까지 않은 파를 큰 다발 그대로 사가지고 와
손질해서 사 대(代)가 나눠먹는다.
양손에 가득 사들고 희희락락 돌아오는 게 즐겁다.
오면서 생각한다. 나도 집에 가서 눈물 흘리며 파를 까 봐야지!
전에는,
“아이구, 매워매워!”
하면서 밖에서 다듬었는데,
‘따뜻한 아랫목에서 처음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눈물 좀 흘려보리라.
메마른 눈에 촉촉한 영양수를 주어보리라.
그러고 보니 눈물을 흘려본 지가 꽤 오래 되었구나.’
생각하는 찰라! ‘할머니 덕분에 별걸 다 되돌아보네.’ 웃음이 나왔다.
어찌 되었든 침침한 눈을 파 다듬는 눈물 만들어
초롱눈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부지런히 실천해 볼 참이다.
“오~후! 오늘 굉장한 수확이야.”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기분은 한층 업 되었고,
들뜨고 있었다. 이러니 인생은 즐거움의 연속일 수밖에!
2016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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