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어 가는 사랑
김 향 옥
“봄 올라믄 아즉 멀었는디,
날씨는 꽃 소식이라두 전허려는 듯 포근 허구먼 기려.
구정연휴 동면한 곰처럼 뒹굴며 시체놀이만 하다가
소중한 휴일들 다보내고 요로코롬 게으름 피우는 사이
우리 반 식구들 부지런 떨며 공부만 했으믄 어쩌나!
특히 춘심이 언니 히히.”
배 아파 하며 퀴즈를 풀어가듯
한 사람 한 사람 다정한 얼굴들을 떠 올립니다.
그리고 입가에 번져 나오는 미소를 머금고
우리 반과 그네들 식구를 소개하려고 멍석을 곱게 펴서 깔아봅니다.
제가 처음 상록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같은 반 학생이라는 동질감보다 이질감이 더 컸습니다.
상록에서 중학과정을 마친 팀들이 대부분이기에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있는 느낌이 들고,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의 눈빛도 향해지는 곳이 정해져있어서
고슴도치처럼 잔뜩 웅크리고 가시만 곤두세웠지요.
누군가 다가와서 건드리면 콕 찌르려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가시는 부드러운 솜털로 변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의 섭리인양 마음이 그들에게 서서히 열려져 갔습니다.
“흠마야!
서론이 넘 길었지유? 울반 자랑해야 허는디. 음! 누구부터 할까?”
“우리의 수호천사 영영이 오빠, 아님 춘심이 언니, 왕언니, 아니야.
그려도 우리 반 ‘짱’이신 김미란 선생님부터 해야쥐.”
미란다 선생님은 미끈한 두 다리를 자랑이라도 하시려는 듯
한겨울에도 거의 치마만 입고 다니신답니다.
‘엄마야! 내 미치겠네’를 연발하시면서 도통 못 알아듣는 수학공식을
녹 쓸어버린 우리들의 머리에 주입시켜주시느라고 무척 애를 쓰신답니다.
쌍꺼풀 없는 눈가에 얄미우리만큼 어여쁜 미소를 머금고 말입니다.
가장 어른이신 교감선생님,
힘찬 발걸음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서시면서
‘자, 시작하죠!’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목소리가 생기는 건지!
시원시원한 글씨체, 특히 칠판에 한문을 많이 쓰시면서
수업을 해주셔서 한문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선생님의 수업이 늘 기다려진답니다.
또 한 분의 국어 선생님 고릴라라고 불려지는 애칭만큼,
우직한 성품으로 수업시간이 쬐끔 지루하긴 하지만
많은 것을 주시려는 선생님의 속마음을 알기에 늘 감사합니다.
똑떨어지는 수학 서민정 공주를 떠올리네요.
공주좀 그만 졸업하고 배필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덧니가 매력이신 국사선생님은 몸 자체가 생글생글 애교덩어리시죠.
‘저번에 말씀드렸죠!’
‘애고! 선생님 과거는 묻지 마셔유! 현실에 충실할랍니다.’
‘알겠는교? 내가 미친다 마!’ 졸래야 절대 졸 수 없게 큰 목리로 한 몫 하시는 현희 선생님,
반면에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꼼꼼히 정리를 잘해주시는 또 한 분의 사회 선생님.
두 분이 계시기에 사회과목은 ‘마! 안심해도 될낍니더. 믿어보이소!’
한 분을 KTX에 비한다면
한 분은 무궁화호로 조화를 잘 이루어 최선을 다하시는 두 분의 영어선생님,
스마일 가정, 선생님, 조용한 미술선생님,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타나 부드러운 미소로 우리를 위로 해주시는 담임이신 한문선생님.
모든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순응하는 우리 반 급우들.
큰 키를 자랑하며 미소를 머금고 뒤에 떡 버티고 게시는 왕언니,
꽃순언니, 갑순언니,
그 옆으로 ‘자연은 좋은 것이여’ 머리로 말해주며
서리 내린 반백의 머리카락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염색을 거부하고,
안경너머로 총명한 눈망울을 굴리며 열심히 수업을 듣는 영영오빠,
그 옆에 숨은 천사 범생 춘심언니,
내보다 한 살 위이면서도 아즉까지 말을 높이는 정순언니
요리 잘하는 효부며느리를 두신 덕분에
가끔 맛나는 음식으로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시는 인순언니,
조용하고 사뿐 웃는 미소가 예쁜 오진임 언니,
순한 어린양 양금이, 뽀오얀 피부의 준애, 영어 잘 하는 혜나,
마음씨 좋은 금자언니,
'언니, 언니' 하며 맛나는 과자 잘 챙겨주는 귀여운 동화,
가끔 한번씩 나타나는 영국신사 남수, 정묘언니, 금순 언니, 영진오빠 and so on.
우리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격려를 보내고,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사랑을 키워내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등 뒤로 들려오는
기차소리를 응원가 삼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랑거리가 무궁무진한데
제가 문장력이 짧아서 제대로 소개를 못한 것 같으네요.
“여러분 아시지요?
우리 반 글 잘 쓴다는 것,
지난 가을 백일장에 우리 반이 상을 힙쓸다 시피 했잖여유.”
더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직접 방문하셔서 보시이소.
문은 언제든지 open되어 있답니다.
멍멍이 해에 멍멍이처럼
자신에게 충직한 후회 없는 한해가 되시기를 소망하면서.
good I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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