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검시를 논하다 Ⅲ
학생우선이라면 합격우선이 필요
- 상록야학은 “생활” 보다는 “야학”이 중요한 곳 -
수학교사 선 종 훈
안녕하십니까? 선종훈입니다.
박용준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상철 쌤의 글도 잘 읽었습니다.
이제는 제 차례인 것 같아 한 번 써 봅니다.
글쎄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주제이나.
처음 수업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갖고 있는 고민은 한 가지였습니다.
학생들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저는 그분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제 나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 분들은 “합격”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들이 “합격”을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몇몇 분들이 말씀하십니다.
상록야학은 “생활야학”이라고.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생활야학의 정의가 무엇인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지 지금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상록야학은 “생활” 보다는 “야학”이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생활”은 어떤 방법으로든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대부분의 행사들이 학생 개인의 친목모임에서 하는
그것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요?
물론 대체 불가능한 것들도 있겠지만,
그런 부분은 상록의 훌륭한 전통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대부분은 충분히 대체 가능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하루 4시간을 수업하고 꼬박 5일 동안 나와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활동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어딘가 학원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으나
원하는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상록야학을 선택하신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대체할 수 있는 것과
절대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박용준 선생님께서 조기 검시는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기 검시는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뒷받침할 여러 제도를 함께 수반 해야겠지요.
가끔 저희 어머니께서 컴퓨터나 영어를 물어보십니다.
아는 범위 내에서 쉽게 설명해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3년 전에는 가끔 겪었던 일들이 이제는 일주일에 3번으로 빈도가 잦아졌습니다.
학교에 계신 학생들 때문입니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이해력도 점점 떨어지는
제 어머니 같은 학생들을 보면서 저는 빨리 합격해서
그 분들이 웃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험의 스트레스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서 당당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합격”을 위해 오신 분들에게 “규정”을 따라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학생들을
“우선” 이라고 생각하는 상록야학이 해야 하는 일인지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고 규정을 바꿔서 학생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을 따르지 않는 것을 먼저 손가락질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가진 규정이 그렇게 완벽한지,
정말 불가피한 경우엔 그냥 은근슬쩍 비밀로 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인지도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2년 동안 학교를 다니신 분들이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2년 아니, 4년을 꼬박 다녀도 결국은 본인의 실력으로
검시를 합격해야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현실에서
결국 저희는 아무것도 보장해 드릴 수 없이 수업만
열심히 들으시라고 강요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박용준 선생님이 제시하신
다섯 가지 이유도 정상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3년을 돌아보니
선생님이 적어주신 대부분의 일들이
현재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합격”의 의지가 강해지고 난 이후에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검시의 스트레스가 없는 학교로,
일정 부분 합격하신 분들은 생업을 위해,
개인의 사정으로 그만두시기도 합니다.
남아있는 분들은 당연히 의욕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그건 “규정”이라는 이름으로도
“노력”이라는 부분으로도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상철 쌤의 말씀대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에서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고 싶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학생들이 바뀌고 환경이 바뀝니다.
학제가 있다고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교사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학생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하여 효과적인 방안을 만들어야합니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
한 번 오면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학교, 원하는 것을
채워갈 수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힘이고 짧은 경험이지만 이런 학교를 꿈꾸며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오랜 경험과 연륜에는 감히 닿을 수 없겠으나,
여기계신 모든 교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더 나은, 더 즐거운 상록야학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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