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자락에서
중 41회 김 경 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실 제가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글로 써왔어요.
읽어드리겠습니다.
3분스피치를 맡겨주셨으니 하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그냥 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세 가지가 여유러워야 한다고 합니다.
하루 중에는 저녁이, 일 년 중에는 겨울이,
일생 중에는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득 한 해의 끝자락 사계절의 마지막 저물어가는 이 시점이
지금 저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일 년여 전에 직장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평소에 언제 죽어도 별로 미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수술대에 올라가니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오겠지 하면서도 막연하게만 여겼던 끝이라는 것이
갑자기 눈앞에 와 있었습니다.
그 순간의 당혹감과 두려움,
그리고 무엇을 향한 것인지 모를 억울함은 나를
참으로 외롭고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5시간이면 끝날 거라던 수술은 8시간을 넘기고서야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저를 당황케 했던 끝이라는 것도 잠시 미뤄뒀지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꼭 병 때문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시간은 유한하고
제가, 아니 우리가 그 끝자락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성인이 되면서 열심히 일하고 결혼하고 자식 키우고
또 쉬지 않고 살아왔는데 아이들은 성장해서 자신들의 삶을 살기에 여념이 없고
결국 내게 남겨진 것은 평생을 부려먹어 망가진 고장 난 낡은 몸뿐입니다.
이렇게 쓸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에
이 곳 상록학교에 오게 됐고요,
여기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지요.
학교를 다니면서 지난 날 이루지 못했던 학업의 꿈을 이룰 수 있어 기뻤습니다.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저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얻은 그 무엇보다 큰 선물은
여러분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다시금 청춘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처음에 한 말 기업하시나요?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세 가지가 여유러워야 한다는 말,
저는 이 상록야학 덕분에 이 시절,
이 계절, 이 시간이 무척이나 여유롭고 풍요로워졌음을 느낍니다.
상록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의 만남과 배움은
저를 시들지 않고 사철 내내 푸를 수 있게 도와주네요.
인생이라는 길을 꽤 오랫동안 걸어왔는데도
아직 여기가 어딘지 맞게 가고 있는지 얼마나 가면 끝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불안한 길을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겨울 햇살이야 말로 그 어느 때보다 귀하고 반갑지요.
앞으로도 우리 삭막한 겨울 서로에게 빛이 되어 주면서
마음의 온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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