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과 노들야학
전직교사 김병석
모꼬지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배우는 것들이
교사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상록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육은 당장의 효과는 드러나지 않아도 향후 더 큰 미래를 위한 투자비용이니까.
그러나 현재 교사가 1년 이상 근무하는 비율이 대략 50% 정도인 점을 감안할 때,
미래에 대한 투자라면 2년 이상 근무자가 그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모꼬지 비용은 1인당 14만원으로 뛰어오르고,
교사 역량을 위한 투자치고는 꽤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조차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면 동의하겠지만,
여행 장소가 영화촬영소나 용문사 정도에 머문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영화촬영소?
차라리 태안이 어떤가.
태안으로 달려가 그곳의 눈물을 담는다면
더 큰 가르침을 상록에서 펼치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영화촬영소보다는 말이다.
아니 꼭 눈물을 담아오지 않더라도 앞서 말한 대로 먹고만 오는 봉사라도 한다면 뜻 깊다고 본다.
산정호수에서 쓴 하루 방값과 이튿날 점심값이 약 50만원이었다.
그 돈을 손님이 없어 텅텅 빈 방에 속앓이를 하며,
생의 마감을 고민하고 있을 태안 주민에게 주고 온다면 돈의 가치는 더 올라갔을 것이다.
또 하나, 총학생회비가 30만원이나 쓰였다.
총학생회비까지 모꼬지에서 쓰여야 한다는데 매우 회의적이다.
그것은 훈훈한 인정을 가장한 -수업료, 입학금 무료라는 플래카드가 무색한-
암묵적 수업료는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내가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는,
고민 없이 결정한 우리의 실수는 아니었을지 되새겨보자.
부디 ‘주는데 어찌 안 받냐,
야박하게’ 따위의 말은 여기서는 삼가자.
구차하다.
또한 졸업생도 아닌 재학생에게 받은 20만원의 지원금도 큰 문제다.
부조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하는 학생이,
옆 학생이 내는 돈을 보며 느낄 불편함은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다.
졸업생이라면 혹 몰라도, 적어도 재학생에게 받는 찬조금은 찬조금이 아니다.
변형된 수업료일 뿐이다.
만약 계속해서 총학생회비나 재학생의 후원금을 받겠다면 플래카드를 떼고 다시 붙여한다.
“수업료/입학금 무료, 단, 총학생회비를 내고,
희망자에 한해 교사행사에 가끔 부조금을 납부할 수 있음”
언젠가 모꼬지 준비과정에서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거기는 ‘특목야학’이냐?”
당혹스러웠다. 맞다. 우리는 봉사를 가장한
사치스런 친목모임에 몸담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를 모든 교사들에게 부탁한다. 나 역시 고민하고 있다.
당장 학생들과 함께 태안으로 가고,
교사 야식비를 모아 대학로에 노들야학을 찾아가 따뜻한 저녁을 장만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은 아닌지 고민해보길 진지하게 부탁한다.
20명도 안 되는 인원이 45인승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는 훨씬 상록다운 모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상록의 교사들에게 고한다.
에어컨을 끄자.
냉장고를 끄자.
난로를 끄자.
교장선생님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임대료가 없어
거리로 내몰릴 제2의 노들야학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간절히 소망한다.
늘 푸르러야 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자.
상록은 교장선생님의 도움 없이도 늘 푸르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용기와 자신이 있는가.
있다면 한 번 같이 도전해보자.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열정이라면!
상록이라는 이름이 ‘공룡야학’이나 ‘특목야학’이라는 걸맞지 않는
권력의 별칭으로 때 묻지 않기를,
순수한 열정으로 닦아내보자.
태안의 기름을 닦아내듯이 말이다. ♧
다시 추신 : 모꼬지로부터 출발해서 이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모꼬지는 상록에서 벌이진 일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태안과 노들야학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가장 인접해 발생한 행사로 비교가 용이했을 뿐 실질적인 문제는 상록 전반에 있다. 모쪼록 모꼬지를 비판하는 모양새가 되어 맘을 불편하게 했을 모꼬지 진행교사나 참가교사들에게는 진심으로 죄송함을 전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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