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빨간 립스틱
변 종 주
오늘 나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엄마의 입술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파운데이션도 바르고,
빨간 립스틱도 바르니 참 예쁘네요.
빨간 입술의 엄마는 대답이 없습니다.
미소만 짓고 있습니다.
어디 가시려고 시집오는 날에도 못 꾸몄던
빨간 입술로 꽃단장 하셨어요?
대답이 없습니다.
미소로 내 마음을 흔들어댑니다.
56년 동안 엄마 마음 알아드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용서를 빌어봅니다.
역시 대답이 없습니다.
미소만 짓고 있습니다.
예쁘게 화장을 했으니
시장에 가서 예쁜 옷 사드릴까요?
아님 차타고 산으로 바다로 붕붕 여행 떠날까?
엄마는 대답이 없습니다.
꿈적도 안 하고 미소만 짓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까지 다 모였으니
어서 집에 가서 화로 위에 무시래기 끓여서
밥 위에 얹어 옛날처럼 먹고 싶다고
보채 봐도 꿈적도 안 하고 미소만 짓고 있습니다.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손님이 찾아오면 반가워하시며 하던 일도 팽개치고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우셨는데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렇게 많은 손님이 찾아오셨는데도
인사만 받고 계신가요?
어서 고맙다고 이야기 해보세요.
발간 립스틱을 바른 엄마는 대답이 없습니다.
여전히 미소만 지은 채 이틀 밤을 잤습니다.
아침 일찍 병원을 나섭니다.
가족, 친지, 손님 다 뒤따라갑니다.
빨간 입술의 엄마는 큰아들 집을 그냥 지나갑니다.
막내아들과 딸이 사는 울산입니다.
엄마랑 같이 옛이야기 나누며
하루 쉬었다 가고픈 마음에 엉엉 울어봅니다.
엄마는 대답이 없습니다.
미소만 지은 채 앞장서서 갑니다.
집이 보입니다.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루루 흘러내립니다.
집에 도착했습니다.
자식들이 오면 언제나 갓 찧은 쌀로
따뜻한 밥을 지어 주셨는데,
가마솥이 차갑게 맞이합니다.
엄마는 집안을 한 바퀴 휙 돌아보고
쉬지도 않고 나갑니다.
시래기 끓여서 밥 먹고 싶다고 통곡해봅니다.
막내딸이 쓰러집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엄마는 바쁘게 나갑니다.
동네사람들이 다 나와 엄마를 맞아 인사를 합니다.
꽃상여도 태워줍니다.
둥둥 북이 울립니다.
노래도 불러줍니다.
다시 오지 못할 이 길을 우리 엄마는
꽃상여 타고 흔들흔들 잘도 가십니다.
시집올 때 연지곤지 꽃가마 없이 오셔서
한평생 한이 되셨던가요?
오늘 이렇게 빨간 립스틱 바르고
꽃단장 예쁘게 해서
서둘러 아버지 곁으로 바쁘게 가시는 건가요?
아무리 떼써도 빨간 입술의 엄마는 대답이 없습니다.
북소리 장단에 하얀 손 흔들어가며 바삐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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