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면 이루어진다
박 근 옥
꿈만 같았던 중학교 입학식장, 중1 소녀의 마음으로 희망에 부푼 꿈을 꾸며 자리에 앉았다. 당당한 선배들에 대한 부러움과 상록중학교, 상록고등학교, 두 번 다시 포기는 없다는 굳은 결심으로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
교감선생님께서 삼십구 년의 상록학교, 힘들게 걸어오신 발자취를 말씀하셨다. 행복에 설레든 내 자신이 순간,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긴 세월에 많은 제자들을 품에 안으시고 힘든 세월에 다리를 건너 내시기에 주름지시고 검은 머리 흰머리가 되신 선생님들이다. 건강이 안 좋으신 선생님도 계시고 안타까운 마음 뼈 속 깊이 스며와 쏟아지는 눈물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선생님께서 졸업생이 울지 입학생이 왜 우느냐고 하셨다. 선생님들의 희생에 인생 끝자락의 내 행복이 너무 죄송스럽고 미안하였다.
그렇게 눈물, 콧물로 졸업식, 입학식을 마치고 짜장파티,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여러 선생님들, 선배님들 즐거운 분위기에 무거웠던 마음도 가벼워졌다.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다짐을 했다. 그러나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시험 때면 선생님께 죄송하여 좌절도 했지만, 마음 달래고, 머리도 식힐 즐거운 일도 많았다.
‘신입생환영운동회’는 13살 중1답게 천방지축 나대고, 엠티에서 각자 배움에 목마른 조각조각들에게 밤새 희망에 가득한 오색찬란한 조각이불을 만들어 고이 덮어주던 선생님들,. 아름다운 자장가 소리에, 손에 손잡고 행복의 꿈을 꾸던 밤. 학우들 마음속에서 별이 되어 속삭였을 것이다.
문학기행, 송년의 밤 등 많은 행사를 통해 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시고, 빨강 파랑 노랑으로 요리요리 쏙쏙 일 년을 가르쳐 주셔도 또 잊어먹는 바람에 너무너무 미안하고 속상했다.
보물1호 문제집, 학교시험, 취업준비,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시고 쉬셔야 하실 시간에 상록학교로 달려오시느라 식사도 못하시고 오셨다. 김밥 한 줄 손에 들고, 늦었다고 땀을 뻘뻘 흘리시며 숨 가쁘게 분필을 잡으시고 미안해하시던 선생님!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에 보석 같은 땀방울을 흘리실 때면, 이 큰 은혜 두 손에 고이 밭쳐 받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어린 마음 다짐했던 시간들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으로도 갚을 길 없기에 안타가울 뿐입니다.
그렇게 중학교 수업을 하고 설렘과 두려움으로 찾아 간 검정고시 시험장, 아침 일찍 오신 선생님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후배님들의 응원을 받으며 고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배운 기억은 있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답안지마킹을 볼펜으로 한 실수까지 시험을 어떻게 보았는지 정신없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오후 생각을 말자 하는데도 선생님께 죄송함과 불길한 마음뿐이었다.
오전의 어려운 시험은 끝났다. 그때까지 기다리시고 계시는 담임선생님께서 답안지를 맞추어 주시고 다들 합격한 거 같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다만 아무래도 안 됐을 것 같은 나의 초조함이 다른 학우들 분위기를 망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 큰언니잖아! 시험 끝나면 저녁 먹기로 했는데 학우들의 몇 십 년 한이 풀린 감격스러운 날인데 축하해줘야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추슬러 큰소리로 “선생님 감사합니다. 학우들 축하해. 모두 합격 축하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노래방까지. 그렇게 밤늦게 제자들을 위해 놀아주시는 선생님께 오히려 너무너무 죄송하였다. 늦은 시간,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한 웃음을 가득 안고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곧바로 학우들에게 보였던 가면은 벗겨지고 싸늘하게 굳어지는 체온을 느끼며 전철에 몸을 실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빗물! 누가 볼세라 창밖을 바라보며 오색불빛에 그려지는 선생님들, 열정과 사랑을 저버리고 시험을 망치다니! 용서할 수 없어. ‘왜? 왜?’ 가로등마저 졸고 있는 늦은 밤 희미한 골목길에 초라한 내 그림자만이 날 지켜주었다.
그렇게 힘든 한 달, 중랑교 다리 위를 걸어갈 때마다 오늘은 선생님 어떻게 뵈옵지? 중랑천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한 달 후 합격이라고 발표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믿기지 않았다. 잘못 아셨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담임선생님 말씀인데 혹시?
잠도 못 자고 아침 56분, 57분, 59분 땡! 떨리는 손으로 숨도 안 쉬고 전화번호를 누르자마자, “합격입니다!” ‘착각이지!’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누른다.
“합격입니다!” 드디어 선생님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내 방 가득 계셨다.
“선생님 합격이래요!”
어린 아이처럼 선생님들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엄마가 내려다보며 웃고 계셨다. ‘장하다 내 딸! 머슴같이 일만 시켰는데!’ ‘엄마 이젠 미안해하지 마세요. 옛날에 졸업했으면 이런 행복 못 느꼈을 거예요.’ 55년의 한을 풀었다. 세상 사람들 이 다 듣게 외치고 싶었다. “68세에 졸업장을 땄어요!”
고생 하신 선생님들의 모습이 서로 다른 아름다운 보석 되어 영화필름처럼 돌고 돌았다. 선생님들의 고귀한 사랑, 진실, 믿음으로 우리 반은 기적 같은 전원합격을 이루었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큰 은혜 표현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내 어머니, 남편, 자녀들도 해주지 못한 일, 선생님들이 하셨습니다. 중학교 졸업! 석양에 지는 노을빛에 날개를 달아주신 선생님들께 그 은혜 영원히 별빛 되어 빛날 것입니다.
새 아침을 여는 태양빛 따라 더 좋은 곳을 향하여 열심히 날갯짓을 하렵니다. 상록선생님들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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