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천년의 도시, 古都 경주의 품에서
초빙교사 박 수 정
문화 답사를 자주 다녔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천 년 전의 사람이 만들었던
그 돌,
그 나무,
그 건물
그대로를 만져보는 그 느낌이 얼마나 경쾌하고 황홀한지를…….
그렇게 천년 경酒에 취하듯 이끌린 하루였을 것이다.
청량리의 어느 새벽
단단히 준비했으렷다.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섰다.
모두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나름 초빙교사라는 명분으로 갔지만,
멀리 떠난다는 외유에 교사 학생이 따로 있으랴!
경주로 가는 도중에 흘러가는 풍경조차도 따스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40여명의 학생들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설레는 아침길
누가 그랬다.
여행이란, 도착하여 즐기는 것보다
준비하고 내려가는 그 마음이
제일 최고의 기분이라고. 그러하였다.
달리는 버스와 휴게소에서의 아침은 정말로 푸근했고,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바캉스를 가는 것도 아니요,
휴가를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문화재가 좋아서,
역사를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기꺼이 따라갔었는데 사람 내음은 푸짐한 덤이어라.
경주에 도착하다
내 시조할아버지께서 거병하시고
세우신 도시, 경주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타고 오던 중의 피곤은 날아가고
낯선 풍경 속에 크게 숨을 들이켰다.
솔직히 중간의 조선소 견학은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생생한 것은
어느 외곽 주차장에서 점심을 먹고
불국사에 내렸을 때였으렷다.
가을 하늘과 천년의 고찰,
불국정토!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10 규모로 줄어들어버린 애환의 사찰.
불국사는 1400년 넘는 동안 우리의 선조들과 함께 하였을 것이다.
창건한 사람이 미타찰로 돌아가고,
그들의 자식들이 다시 자식을 낳고,
아장아장 걷고 뛰다가 미타찰로 돌아가는 수 없는 반복을 했을 터였다.
불국사 옆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나이가 들어 돌아가는 윤회의 바퀴를 헤매는 동안
묵묵히 성불과 열반을 도왔으려나.
불국사는
100년도 안 되는 사람의 인생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들만하면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을까,
이승에서의 연을 다하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그 것이 숙명이라며 중생 한 명이라도 더 구제하려고 애썼을까.
지금의 나 역시 불국사가 보았을 땐,
수 없이 나고 자라고 돌아간 사람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쩌면, 불국사의 연화교 칠보교는
나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1400년 전에 불심이 깊어 매일 불국사를 드나들며
치성을 드리던 그 사람을 꼭 닮았다고.
당신의 자손이 당신을 꼭 빼닮았다며
아쉬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낄지도…….
불국 정토의 기운
불국사 경내는 아쉬우리만치 좁았다.
그 옛날 연못이 흐르고
3000칸이 넘는 위용은 어디 가고
이리 조그마한 칸만 남았느냐 아쉬움도 남았다.
아사녀가 빠져죽은 그 연못은,
아사달이 그렇게 열을 다해 짓던 석가탑은,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전생의 부모를 위한 불심의 흔적 석굴암은,
지금 내 눈으로 볼 수가 없어 아쉬운 그 흔적은 다 어디로 갔느냐.
심지어 대부분의 건축물은 조선 영조 시절에 재건한 것으로서
신라시대 그대로 있던 흔적은 기단과 석굴암 전실 등일 뿐이었으리라.
아…….
1400년 전의 손길은 어디에 있느냐.
불국사에 와서 내가 애타게 찾고 싶었던 것은
1400년 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바로 그 물건의 감촉이었다.
하지만, 기단과 몇몇 기둥들 외에는
신라의 손길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호기심 많은 학생들은
내게 수많은 것들을 질문해온다.
그 호기심이 반갑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않고 경청하는 그들의 순수함.
호기심 많은 소녀들처럼
모든 것이 하나하나 궁금한 학생들을 보며,
불국사의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는 중에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천 년 전의 손길이 중요하느냐,
천 년 전의 기운이 중요하느냐.
현실은 너는 이곳에 있고,
불국 정토의 기운을 느끼고 있지 않느냐.
천 년 전에 한 번 지었으면 족한
그 정신이 변치 않았으면 되었지,
세상에 불멸의 것도 있더냐.
결국 부처님의 불국정토의 기운은 눈에 보이는,
손에 닿는 곳에만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냐.
진정한 불국사의 불국정토 기운은
불국사를 찾고 공부한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더냐!”
아사달과 아사녀에 얽힌 설화를 이야기해주면서 느꼈던
그 천 년의 사랑, 다보탑 돌사자와 석굴암을 약탈해 간
일본의 만행을 이야기하면서 느꼈던 한국인으로서의 분노,
학생들의 질문에 정성을 다해 대답하던 그 모습,
그 것이 바로 온 목적이라는 것을 부처님이 알려주신 듯하다.
나는 큰 깨달음을 얻어 그저 합장을 하며
기도로 화답하는 것 밖에 할 것이 없었다.
경주의 석양을 바라보며
학생들과 함께 지식을 공유하며
만족감을 느끼려고 찾은 이 기행의 끝에서
걸려 있는 석양을 보았다.
오늘 하루, 먼 곳에 와서 즐겁게 느끼고 가는
우리를 바래다주는 그 석양의 햇살은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불국사를 붉게 적시는 석양의 장관 앞에
그 순간만큼은 그대로 나도 붉게 적셔지고 싶었다.
부족한 동행교사의 답변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얼마나 충족시켜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 따라 생각을
해 보면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였고,
소중한 추억을 쌓았고,
내 마음속의 불국 정토의 기운을 느꼈었다.
그 것이면 된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
우리를 비추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
여행은 역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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