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이야기
문예창작반 박 용 준
달리는 차창 안으로 초여름 따가운 햇살이
비스듬히 점점 여러 모양 종잇장을 만들어 날리며 비쳐들고 있었다.
아직 퇴근 시간이기는 일러서 인천에서 성북으로 가는 전철 안은 침묵을 유지하며
그런대로 서넛이 서있을 뿐 나머지는 아기자기하게 모두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때 앞 칸 통로 문이 열리면서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이쪽으로 확 끼쳐 들어왔다.
등산복장을 한 60대 후반의 노인 둘과 60대 초반의 노인 하나가 들어서 경로석 앞에 섰다.
한 자리 비어 있던 곳에 그 중에 가장 연장자인 듯 깡마른 얼굴에 점이 이마에 크게 돋아난
점박이노인이 두 노인의 권유로 먼저 앉았다.
가장 젊어 보이는 눈자위가 유난히 처지고 광대뼈가 불거진 얼굴의 60후반 노인은
벌건 얼굴에 어느 정도 취했는지 비척비척하며 벽에 가 기대선다.
마지막 입가엔 술지게미가 허옇게 말라붙어 있는 채,
얼굴 여기저기 검버섯이 가득한 노인은 광대뼈 옆에 가 나란히 기대선다.
점박이 노인이 입을 떼었다.
“아까 그 여자는 어찌 됐을꼬?”
“뭐, 어떤 여자?”
“산에서 말이야. 자네 앞서 가던 젊은 여자, 멀쩡히 잘 내려가더니만 맥없이 쓰러져 굴렀잖은가.”
“그려 참! 거기서는 구를 데가 아닌데, 순식간에 변을 당헌거지.”
“그려, 정신 차려야지. 함께 온 남자가 들쳐 없고 내려는 가더니만, 어찌 된지?”
“하긴 나중에 119에서 산으로 올라가던 것으로 봐서
아마도 그 업고 내려오던 사내가 힘들어서 119를 부른 것일 게야 아마.”
그때 옆에 광대뼈 노인이 생각났다는 듯이
검버섯 노인의 배낭에 들어있던 등산용 지팡이를 빼어 든다.
“그러니까 산에 오르려면 이런 지팡이 하나는 꼭 필요하겄지.
이놈 하나 들고 오르면 숨이 안 차 좋지, 내려올 때 몸 중심을 잡아 주지. 요놈이 최고라니까 허허.”
광대뼈는 지팡이를 길게 펴더니 휘휘 저어보고 바닥에 찍어도 본다.
앞에 앉은 젊은이가 흠질 하고 얼굴을 뒤로 제긴다.
“이거 재질이 알루미늄이거든. 지팡이 한번 참 잘 만들었어. 가볍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 들고 다니기 딱 십상이야. 평지 역시 어떤가?
늙은이 폼 한번 이렇게 거시기 우아하게 낼 수도 있고,
지나다 길에 뭐 돌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이렇게 처내서 통행하기 좋게 사용하지도 않나?”
광대뼈는 지팡이를 보기 좋게 휘휘 내둘렀다.
이번에도 의자에 앉은 손님들 얼굴 가까이 지팡이 침이 왔다갔다 위험스레 스쳤다.
경로석에 앉아있던 아까의 그 젊은 사람이 또 맞을 뻔 하였다.
그는 아까 노인들이 들어올 때 좌우를 둘러보고
다른 젊은이들도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내처 그대로 있었다.
아예 눈을 감고 있다가 떠드는 소리가 심해지자 그만 눈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광대뼈노인이 계속해서 지팡이를 휘두르자 그만 벌떡 일어났다.
“에이 참! 아저씨, 거 눈 빠지겠습니다. 조용히 해주실 수 없어요?”
그리고 청년은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 2편에서 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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